더는 없는 더는 없는 더는 없는 더는

나는 내 노래를 아주 많이 불렀다. 일관된 제품으로서의 노래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고 취미로 정해두었기 때문에 무조건 조금씩 바꿔 부르게 된다.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계속 혼자 부르기엔 질리니 말이다.

등 위의 밤은 아주 오래된 노래다. 미묘하게 계속 달라지기도 했지만 크게 바뀌진 않고 있었다. 꾸준히 흔들리던 것은 박자였는데, 그 정도가 점점 커지다가 급기야 두어 소절의 가락을 바꿔 부르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다음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가사와 구성까지 다 바뀌었다. 그것은 재밌는 일이었다. 이 이후로 만드는 노래는 당분간 예전 노래 다시 만들기로 정했다. 돌아보면 실은 전부터 어느 정도는 그런 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만들 노래는 만들 만큼 만들었다. 지금은 새로 만들 시간도 없고 새로 만들 필요도 없다. 크게 생활이 바뀌지 않는 한은. 점점 줄어 가는 이쪽 취미 역량을 노래로부터 노래가 분리되어 나오는 순간에 집중시켜 볼 요량이다. 이 노래는 그런 마음 아래 만들어진 노래다. 이를테면, 내가 만약 민족이라면.

가락은 박자라는 차량에 묶여 있고 구성은 가락이라는 차량에 묶여 있다. 가사는 그들 모두가 싣고 가는 승객이고, 동차는 역사라는 노선 위로 미끄러진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객차에는 예전의 그 승객들이 타고 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예전과 다르다. 열차는 산을 지나고 있다. 터널의 어둠과 골짜기의 빛이 그들의 얼굴 위로 교차한다. 점점 더 빠르게, 또는 더 느리게. 그들의 얼굴은 밝아진 듯도 하고 어두워진 듯도 하다.

바뀐 가사는 소련 생각을 하며 만들었다. '너'는 소비에트 연방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뜻은 없다. 그것은 더는 없고, 누구의 친구도 아닌 우리에게 울지 말라고 말한다. 그건 반쯤만 농담이다. 소련 생각만 하면 좀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고 그렇다. 그런 승객들이 탄 그런 노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