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의 방에 갔던 일

군대에서 등 위의 밤과 함께 맨 처음 만든 노래였다. 당시에는 등 위의 밤에 이어서 부를 수 있었다.

지나치게 유치했던 첫 가사를 이렇게 고쳐보고 저렇게 고쳐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버려두었다가 망원에서 새로 가사와 제목을 붙였다.

지옥에 있는 선생님들 중 가장 중요한 이인 선생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시기에 여러 가지 내가 알지 않아도 되었을 것들의 꼬투리를 그가 알려 주었다고 느껴진다. 그는 내 정신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한 이이고, 그의 방식을 따라 그 점을 기리고 싶었다.

그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이중적인 사람이었고, 이중적인 뭔가를 이중적인 방식으로 썼으며, 그가 쓴 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 또한 이중적이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는 투쟁의 화신 같은 것으로 내게는 여겨진다. 천사와의 씨름처럼도 보이고 천사처럼도 보인다. 그는 읽을 때마다 생각을 새로이 하게 한다. 그에 대해서는 아주 복잡한 감정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계속해서 읽고 싶은 동시에 더는 읽고 싶지 않다. 어떤 곳에는 여전히 그와 나만 있는 셈이다. 그 새끼는 아주 개새끼다...

웃기는 가사를 쓰는 노래를 싫어한다. 우스운 가사는 하나의 태도인데, 그런 태도를 싫어하는 나에 대한 응답이다.

소비에트 연방을 생각했다. 짜르에 대해서도, 구시대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별들은 선생 같은 것이라고, 또 선생은 별들 같은 것이라고 일전에 썼다.

바드에 대해서 생각했다.
러시아에 가본 적은 없고, 사형장과 유형지도 물론 가본 적이 없다.
라임

다른 노래들과는 사뭇 다른 노래다. 사뭇 다른 방식으로, 부르기 어려운 면도 있다.

'무만 들어간 국만 먹었던'이란 구절을 좋아한다. 무만 들어간 국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도입부와 1절의 스트로크를 12프렛 위에서 하는 것이 잊지 말아야 할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