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낯으로 만나면

밝은 낯으로 만나자는 건 군대 가기 전의 슬로건들 중 하나였다.
코드와 멜로디를 갖고 있다가 낭독회를 앞두고 이틀에 걸쳐 가벼운 마음으로 가사를 붙였다. 다른 노래들에 비하면 수정은 거의 없었다.

낭독회와 벌레를 떠올렸다. 낭독회는 낭독회였고, 벌레는 좋아한다.
벌레에 대한 노래다.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 좀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큰 패배로 생각된다. 이것은 별 생각 없이 만들었다.

너무 감상적인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 많이 불렀기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 조금이라도 불러 주는 거의 유일한 노래인 것은 좋다. 좋아할 일은 아니다.

손을 맞잡고 있을 뿐으로, 할 때 슥 사람들을 훑어보면 혼자서 손을 맞잡은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것도 좋다.
뚫린 입을 바라보고 있을 뿐으로, 할 땐 뚫린 입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한다.

잘못 들은 가사가 항상 더 좋다는 사실을 이 노래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서도 확인했다. 모두 이길 수 있도록, 처음부터 울릴 수 있게. 그걸로 바꿀까도 싶다. 이기고 울리는 일에 비하면 잊고 떠올리는 게 대체 뭐가 중요한가.

밝은 낯으로 만날 수는 없다. 별들 같은 힘. 별에는 별 힘이 없다. 벌레 같은 힘. 버러지라는 것을 생각한다.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는지.